세계가 손뗀 베트남 석탄발전소에 눈독들이는 한국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10월 5일 1,200MW 규모의 베트남 붕앙2 프로젝트 투자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사업 추진이 13년간 지연된 붕앙2 프로젝트에는 22억 4,000만 달러(약 2조6,000억원)가 듭니다. 한전은 홍콩전력의 지주사인 CLP홀딩스가 갖고 있던 40%의 지분 인수를 고려 중이죠. 최근 신규 석탄사업 중단을 선언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사업 철수가 예상됨에 따라 삼성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붕앙2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외국 은행들
지난 7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 프로젝트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붕앙2 발전소를 25년간 운영할 경우 약 1억 6,800만 달러(약 1,9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전 몫의 손실액은 8,400만 달러(약 980억원)죠. 미쓰비시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일흥증권(SMBC) 등 투자 기관은 물론이고, 일괄 수주 방식으로 공사권을 따낸 GE같은 업체들의 사업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얘깁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해당 분석이 나오기 전 CLP홀딩스, 스탠다드차타드, OCBC, DBS 등 여러 글로벌 금융기관은 이미 붕앙2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습니다.
작년 11월 붕앙2에서 빠져나온 싱가폴 은행 OCBC의 최고경영자 사무엘 첸은 앞선 4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12월에는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나섰습니다. 늦어도 2030년부터는 수입에서 석탄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미만인 기업하고만 거래하겠다고 발표한거죠. 스탠다드차타드는 또한 세 개의 석탄 프로젝트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는데,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여기에 붕앙2 프로젝트도 포함됩니다.
CLP 역시 신규 석탄발전소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으며, 2050년까지 자사가 투자한 모든 석탄 프로젝트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작년 12월 CLP는 베트남의 빈탄3와 붕앙2에서 손을 뗀다는 사실을 비공식으로 인정했습니다.
화석연료 투자 철수는 세계적 추세
이러한 투자 철회 소식은 탈석탄의 세계적 흐름과 궤를 같이합니다. 미국 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IEEFA)에 따르면, 전 세계 130개 이상의 주요 은행 및 보험사가 올해부터 석탄 채굴 및 화력발전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 생산 가격이 급락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방향을 전환하는 정책이 확산하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베트남 에너지 시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2월 베트남 공산당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확대하고, 탈석탄 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정치국 결의안 제55호를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도 한전이 붕앙2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팎의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한전 지분의 30% 가량을 소유한 해외투자자들의 반발이 심하죠. 지난 5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석탄 프로젝트 투자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한전에 보냈습니다. 블랙록은 이에 앞서 1조 8,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사의 운용 기금에서 석탄 채굴과 관련한 투자를 회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리걸앤제너럴, 처치오브잉글랜드, APG 등의 기관투자자들 역시 한전의 계속적인 석탄 투자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는 삼성
GE는 지난 22일 신규 석탄사업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가 붕앙2 프로젝트에 대한 GE의 입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금융기관 감시단체 마켓포시스의 줄리안 빈센트 대표는 “GE는 이번 발표로 박수를 받기 전에, 텍사스의 석탄발전 설비용량을 두 배 이상 늘린 것과 맞먹는 18개 석탄화력발전소 계획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18개 계획에는 붕앙2도 포함돼 있죠.
만약 GE가 붕앙2 프로젝트에서 공식 철수한다면, 사업 참여를 고려해 온 삼성물산이 시공사 지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해외투자자들은 한전에 이어 삼성에도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최대 연기금 운영사인 KLP, 영국 최대 자산운용사 리걸앤제너럴 등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죠.
한전이나 삼성이 손실과 비난을 무릅쓰고 해외 석탄 프로젝트에 발을 담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9년 한전은 호주 바이롱 탄광 투자에 실패하면서 약 5억 달러의 손실을 봤습니다. 삼성증권은 지난 7월, 지역 환경단체들의 잇단 항의에 호주 아다니 석탄사업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죠.
향후 전망
해외 석탄사업 투자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붕앙2 프로젝트에 긍정적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해외 석탄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최근 입장은 ‘원칙적으로 어떠한 해외 신규 석탄사업에도 자금을 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죠.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9월 22일 “해당 국가에 다른 에너지 대안이 없거나, 보다 효율적인 초임계석탄발전 기술이 요구될 경우, 정부는 OECD 지침에 따른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국회에서 한전 및 국내 3개 공공 금융기관이 해외 석탄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법안은 아직 통과되기 전이고, 한전 이사회가 다음달 초 붕앙2 프로젝트를 승인한다면, 사업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수익성 없이 환경 파괴만 불 보듯 뻔한 이 사업으로 인해, 향후 30년간 2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겁니다.